기독교강요강해(151)_프린트물_2026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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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1-06 21:48본문
기독교강요강해(151)
[ 제3권 제23장 12항 – 제23장 14항 ]
성경본문: 요한복음 6:65
기독교강요(존 칼빈, 생명의말씀사)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오며 어떤 효력이 따르는가?
제23장 이 교리를 겨낭한 거짓되고 부당한 비난들에 대한 반박
(예정을 선포하는 것은 유해하지 않고 도리어 유익하다, 12-14항)
12항. 네째 반대론: 선택 교리는 고결하게 살려는 열의를 전적으로 말살한다
우리의 반대자들은 예정론을 뒤엎기 위하여 만일 그것이 옳다면 선행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전적으로 파멸되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생사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한 명령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들을 때에, 누가 하나님의 예정은 자기의 노력으로 막을 수도 없고 진전시킬 수도 없으므로,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즉각적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포자기에 빠지며 정욕에 끌리는 대로 무모한 생활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그들이 전연 거짓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악한 모독적인 언사로 예정설을 더럽히는 돼지들이 많으며, 그들은 이런 구실로 모든 충고나 책망을 회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우리에게 대해서 일단 결정한 처리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구원으로 결정하셨다면 적당한 때에 우리를 그리로 데려가실 것이요, 사망으로 예정하셨다면 우리가 반대해서 싸운들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이 위대한 신비를 더욱 경외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동시에, 신자에게는 훨씬 다른 태도를 가르치며, 이런 사람들의 범죄적인 미친 태도를 효과적으로 반박합니다. 성경이 예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우리가 불경건하고 경솔하게 하나님의 알 수 없는 비밀을 찾아 덤비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목적은 도리어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교만을 꺾고 항복하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떠는 동시에, 그의 자비를 존중할 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목표로 삼는 것도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 돼지들이 꿀꿀거리는 데 대해서는 바울이 적당하게 침묵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아무 걱정 없이 죄악 생활을 계속하노라고 말합니다. 그들도 선택된 사람들 사이에 들어 있다면, 죄가 그들의 궁극적 구원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선택된 목적에 대해서, 그것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는 생활을 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엡1:4). 만일 선택의 목표가 거룩한 생활에 있다면, 선택은 아무 선행도 하지 않는 구실을 우리에게 준다기보다, 도리어 우리의 마음을 거룩한 생활에 집중하겠다는 열의를 일으키며 자극할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에는 선택으로만 충분하다고 해서 선행을 중지하는 것과, 선택을 해주신 목적인 선의 추구에 몸을 바치는 것, 이 두 가지가 얼마나 서로 다른가를 비교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런 신성 모독적 언행을 일소하십시오. 그것은 선택의 질서 전체를 뒤엎는 악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모독 행위를 확대함으로써 하나님께 정죄받은 자가 결백하고 정직한 생활을 하여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더라도(딤후2:15), 그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은 전연 파렴치한 거짓말입니다. 이런 노력이 선택 이외에 어디서 올 것입니까? 버림을 받은 자들은 천하게 쓰도록 만든 그릇이므로(롬9:21 참조), 아무리 심판에 대해서 무익한 저항을 계속하더라도, 그 끊임없는 범죄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 뿐이며 분명한 표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그들 위에 선언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여 마지 않습니다.
13항. 다섯째 반대론:선택 교리는 모든 충고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정론이 마치 경건한 생활에 대한 모든 충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악의에 찬 파렴치한 훼방을 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흑자가 어거스틴을 크게 악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책망과 은총에 관하여 발렌티누스에게 보냄 (Rebuke and Grace to Valentinus)이라는 글을 써서 그 악의를 일소하였습니다. 경건하고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정직하고 양순한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몇 가지 점을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택을 분명한 말로 공공연하게 선포했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경고와 훈계를 하는 데 대해서 냉담하였습니까? 선량한 열성가들에게 그들과 바울의 열의를 비교해보게 하십시오. 바울의 강렬한 열의에 비하면 그들은 얼마나 냉담한가를 깨달을 것입니다. 사도는 모든 의심을 제거하는 원칙을 말하였습니다.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살전4:7),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살전4:4),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요컨대, 바울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긴 설명이 없더라도, 그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는 일들을 사도가 잘 조화시켰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는(요6:65) 말씀은 거짓도 아니며, 그의 명령에 상반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를 계속하여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며, 그들을 믿음 안에서 보존하여 끊임없는 유익을 얻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정에 대해 인식함을 막지 마십시오. 그래야만 복종하는 자들도 자기의 힘으로 되는 일같이 자랑하지 않고 주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마13:9) 하신 말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가 권고하며 전도할 때에, 그들은 기꺼이 순종하지만, 귀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라는 말씀이 응합니다(사6:9).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그러나 왜 이 사람들은 귀가 있고 저 사람들은 없는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롬11:34). 감추어진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명백한 것을 부정할 것인가?” 나는 어거스틴의 말을 충실히 옮겼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보다 그의 말에 더 강력한 권위가 있을 것이므로, 그의 글을 인용하기로 합시다. “만일 이 말을 듣고 무감각하고 태만하게 되어, 종래의 노력을 버리고 마음대로 정욕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예지에 관해서 한 말을 거짓이라고 여겨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선해질 것을 예지하셨다면, 그들이 빠져 있는 악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그들은 착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악하리라고 예지하셨다면, 그들이 지금은 아무리 선한 점이 보일지라도 악하게 될 것이 아닌가?” 이런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러면, 예컨대 하나님의 예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다른 오류들을 범하게 되는 때에, 하나님의 예지에 대한 말을 부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보류해야 하는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유와 진실을 말할 필요성은 문제가 서로 다르다. 진실을 말하지 않을 이유를 모두 찾아내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그러나 그 중의 하나는, 이해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더하기 위해서 우리가 말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악하게 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말해도 이와 같은 사람들의 지식이 증가되는 것도 아니요, 더욱 악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진리를 우리가 말하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더 악해지고, 우리가 침묵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더 악해진다면, 그런 진리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진리를 얻도록 말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쪽도 진리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력이 더 있는 사람은 손해까지 보게 될 것이다. 그가 듣고 받아들인다면, 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게 될 수 있다....또 우리는 성경의 증거로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진리를 말함으로써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넘어지게 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음으로써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허위에 빠지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끝으로 그는 이 생각을 압축해서 더 명쾌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그 뒤를 이은 교회의 교사들이 두 가지를 다 했다면 즉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루며, 동시에 신자들을 경건한 생활 훈련 하에 붙들어 놓았다면 - 왜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대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진리의 구속력을 느끼면서도 ‘예정에 대한 말은 옳다고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에게 선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옳게 생각하는가? 확실히 이 말씀은 선포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게’ 해야 한다(막4:9,마11:15,눅8:8). 그러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에게서 받지 않으면 누가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할 것인가? 받지 않는 사람은 거부할는지 모르나, 받는 사람은 받아서 마시고, 마시면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도록 경건을 선포해야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도록 이런 예정을 선포해야 한다.”
14항.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예정을 바르게 선포하는 데에 있어서 모범을 보였다
그러나 저 거룩한 분은 덕을 세우려는 비상한 열의로 진리를 가르치는 방법을 조절하여, 가능한 한 실족하게 하는 일을 현명하게 피하였습니다. 그는 진리를 말하더라도, 동시에 적당한 표현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회상시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신들이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이미 하나님의 뜻으로 멸망하도록 예정되었기 때문이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태만한 마음을 조장할 뿐 아니라, 악한 의도에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만일 미래에 대해서도, 그들이 이미 정죄되었으므로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가르치는 말이라기보다 저주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이런 사람들은 미련한 선생이거나 악하고 불길한 예언자이므로 교회에서 물러나라고 정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 책망을 하지 않고서도 그가 원하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는 분께서 긍휼을 베푸시며 도움을 주실 때, 사람은 책망에서 유익을 얻는다는 견해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왜 사람에 따라 방법이 다른 것입니까? 결정권이 토기장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진흙에 있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후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책망을 들음으로써 의로운 길에 들어오거나 돌아올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구원을 실현하는 분은, 누가 심고 누가 물을 주든 간에, 오직 자라게 하시는 그 분이(고전3:6-8) 아닌가? 한 번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정하시면 사람의 자유 의지가 그 결정에 저항할 수 없는 그 분이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 곧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시는 이’(시135:6), 장차 있을 것들도 만드신 이(사45:11)의 뜻에 사람의 뜻이 저항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사람이 방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의지를 이용해서 그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인도하실 때에, “그들을 신체적으로 구속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내적으로 역사하신다. 즉 내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붙잡으시며 움직이시며 그들에게 내적으로 역사하셔서 그들 자신의 뜻으로 그들을 이끄신다.” 그러나 그 직후에 첨가하는 말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예정된 수효에 포함되며 누가 포함되지 않는지를 모르므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원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마다 우리의 평화에 참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평안은 평안의 자손들 위에 머물 것입니다(눅10:6,마10:13 참조). 따라서 우리의 입장으로서는...건전하고 엄격한 책망을 의약품처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서 그들 자신이 멸망하지 않도록 또는 그들이 다른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예지하시고 예정하신 사람들에게 책망이 유익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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